[카일의 수다#821]끝없이 내리는 비와 함께하는 동말레이시아의 겨울

안녕하세요, 카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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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지내다 보면, 일 년 내내 더운 날씨와 함께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금세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11월이 다가오면 날씨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고, 비가 며칠씩 이어지며 공기가 한층 더 습해지죠. 이 시기가 바로 북동계절풍(Northeast Monsoon),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흔히 ‘우기(Rainy Season)’ 라고 불리는 시기입니다.

북동계절풍은 보통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집니다. 이때는 차갑고 습한 바람이 중국 남부에서 불어와 남중국해를 건너 동쪽 해안을 따라 불어오기 때문에, 동말레이시아(사바와 사라왁 지역) 가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바람이 바다를 지나며 많은 수분을 머금게 되어, 해안과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강한 비가 자주 내리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날씨가 거의 매일 흐리고, 비가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몇 시간, 때로는 며칠씩 이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사라왁의 해안 지역이나 사바의 산악 지대는 강우량이 매우 많아 홍수나 산사태 위험이 높아집니다. 바람도 거세져서 해상 교통이 불편해지고, 작은 섬으로 가는 배편이 중단되는 일도 종종 생깁니다.

생활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비가 자주 오다 보니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출퇴근길 도로가 물에 잠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공기가 맑아지고, 숲과 산은 푸른빛을 더 짙게 띠며 생기가 가득합니다. 덥고 건조한 시기와 달리, 이 시기에는 밤 기온이 약간 내려가 조금 더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말레이시아 기상청(MET Malaysia)은 북동계절풍 기간 동안 5~7차례 정도의 집중호우(Continuous Heavy Rain) 에피소드가 있을 것으로 예보합니다. 이런 시기에는 정부에서 폭우 경보나 해상 경보를 자주 발령하므로, myCuaca 앱이나 MET Malaysia 공식 채널을 통해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기 동안에는 단순히 ‘비가 자주 오는 계절’이라는 것을 넘어, 자연의 리듬과 함께 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날씨에 맞춰 계획을 조정하고, 비 오는 날엔 여유롭게 집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기거나, 장대비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곤 합니다.

결국 말레이시아의 북동계절풍은, 불편함 속에서도 이곳의 기후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계절입니다. 비가 멈춘 뒤 맑게 갠 하늘 아래, 짙은 녹색으로 빛나는 숲을 보면 “이 모든 비가 헛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비록 가설 사무실의 폭우 소리로 대화조차 어려울 지경이지만요. 이 또한 그리워질 때가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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