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의 수다#793] 스위스 여행 29 중세의 시간 속을 걷다, 스위스 베른 당일치기

스위스의 수도 베른(Bern) 은 늘 조용하고 단단한 인상을 주는 도시입니다. 12세기 창건 당시부터 중세의 도시 구조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도시 이름이 ‘곰’을 뜻하는 독일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유명한데, 실제로 시내 곳곳에서 곰을 상징하는 조각과 문양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 한 도시의 정체성이 얼마나 오래 이어져 왔는지 체감하게 됩니다.
특히 베른의 아케이드(아르카데)들, 건물들이 길게 이어지며 형성된 반(半)실내 보도, 은 다른 유럽 도시에서는 잘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줄지어 늘어선 석조 건물들이 통째로 하나의 거대한 벽처럼 마주 서 있는 듯한 느낌.
답답함이 아니라, 그 시대를 관통해 온 묵직함 같은 것이 도시 전체에 깃들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중세의 도시 구조를 그대로 살려낸 베른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단연 베른 시계탑(Zytglogge). 13세기에 세워져 도시의 관문이었던 이 탑은 오랜 세월 동안 시계와 천문관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각이 되면 작은 인형들이 움직이며 시간을 알려주는데,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움직임 덕분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 바라보게 되는 명소였습니다.
잠깐의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베른은 스위스의 다른 도시들과는 또 다른 고즈넉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간간이 흩뿌려 더 고요했던 거리, 아케이드를 따라 이어진 상점들과 오래된 건물들, 그리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도시의 리듬까지. 짧지만 충분히 깊이 있는 하루였습니다.
그 속에서 발견한 작은 카페에서 마신 커피향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시 한 번 들른다면, 이번엔 조금 더 여유롭게, 골목들 사이사이를 천천히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곰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 글과 사진들은 25년 7월 4일부터 16일 약 2주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했던 꿈같은 스위스 여행을 기반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