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의 수다#790] 스위스 여행 26 아레슐루흐트 협곡(Aareschlucht), 자연이 깎아낸 거대한 미로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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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 숙소 근처라 빠르게 한 번 둘러보자하고 들렸던, 스위스 아레슐루흐트(Aareschlucht) 협곡.
브리엔츠 호수에서 흐르는 아레강이 수천만 년 동안 바위를 깎아 만들었다는 이 협곡은, 말 그대로 자연이 직접 조각한 거대한 미로 같았습니다.

입구를 지나 처음 발을 들였을 때는 사람도 많지 않아 한결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협곡 벽을 따라 놓인 좁은 데크 위로 걸어가면 코앞에 육중한 절벽이 서 있고, 바로 아래에서는 에메랄드빛 강물이 힘차게 흐릅니다. 흐르는 물소리, 협곡 사이로 떨어지는 빛, 시원한 바람… 복잡했던 생각도 절로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편도 중간쯤 걸어갔을 때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주차해둔 차 때문에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빗속에 협곡을 걸어야 하니 발걸음이 절로 빨라지더군요. 그래도 머뭇거리며 바라본 협곡의 풍경은 여전히 장관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절벽은 더 짙고 깊은 색으로 변하고, 물빛은 힘차게 소용돌이치며 더 선명한 에메랄드빛을 띠었습니다.

‘끝까지 여유를 즐기고 싶다…’라는 마음과 ‘서둘러야겠다…’는 현실적 감정이 교차했지만, 짧은 순간에도 이 협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레슐루흐트는 길이가 약 1.4km, 높이 수십 미터의 거대한 석회암 절벽 사이를 걷는, 스위스에서도 꽤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입니다. 힘든 트레킹이 아니라 데크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날씨만 잘 맞으면 정말 강렬하고 감동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지요.

이번엔 비 때문에 조금 서둘러야 했지만, 그럼에도 “한번쯤 꼭 들러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협곡이 보여주는 빛의 변화까지 천천히 즐기고 싶네요.

<이 글과 사진들은 25년 7월 4일부터 16일 약 2주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했던 꿈같은 스위스 여행을 기반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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